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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책을 읽다가 ‘영적 홈리스’라는 낱말 앞에서 딱 멈추었다. 나도 ‘영적 홈리스’가 아닐까? 라는 고약한 생각에 심각해진 것이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노숙자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LA같은 대도시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골칫거리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데 대책은 거의 없는 답답한 현실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낱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우스 리스’가 아니고 ‘홈 리스’다. 생존과 사랑의 문제, 생명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걱정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물질적 공간의 문제가 고작이다. ‘홈리스’의 아픔을 돌보기까지는 멀고도 멀었다. 정신세계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현실적으로 가장 근본적이고 많은 대답은 신앙일 것이다.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절에 가서 절하는 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까? 그럴까?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언제나 절대자에 기대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디인가? 내 마음의 고향은? 혹시 예술이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야무진 꿈을 꾸어보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다.   내 영혼의 집,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   “몸이 많이 아팠던 작년 겨울 어느 날, 그가 서재에 있는 어머니 사진 앞에 망연히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죽음이 바짝바짝 쫓아오는 그 암담한 시기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의 기댈 언덕이었던 모양이다. 아내도 자식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런 절박한 시간에 그는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령 선생의 부인 강인숙 관장이 고인을 기리며 쓴 책 ‘만남’의 한 구절이다. 기독교 세례를 받기 전의 이어령 선생에게 어머니는 신성(神性)을 지닌 절대적 존재였다는 것이다. 선생의 어머니는 그가 11세 소년일 때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몸은 70년 전에 떠나가셨지만, 어머니는 평생 아들의 영혼의 집,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강인숙 관장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어느새 잊어가는 자신을 한탄하자,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감동적이다.   “걱정 마, 어머니는 다시 돌아와. 와서 영원히 안 떠나셔.”   어머니를 구원의 상징으로 그린 예술작품은 많다. 러시아 한인(韓人) 화가 변월룡(1916~1990) 화백의 어머니 초상화도 좋은 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어머니를 그렸다. 이미 40년 전에 세상 떠나신 어머니를 그림으로 살려냈다. 울면서 그렸다, 미술전문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이 그림은 변월룡 화백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안 돼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5년 뒤 숨졌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어머니를 그린 것이다.   화가 변월룡은 러시아 최고의 레핀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이 대학의 정교수가 된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이며, 리얼리즘 미술에서는 단연 한국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존재였다.   그가 그리움을 담아 그린 ‘어머니’는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화가는 왜 말년에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렸을까? 그림 맨 밑 오른쪽 귀퉁이에 한글로 ‘어머니’라고 적었다. 평생 타향살이를 한 화가에게 어머니는 고국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 디아스포라 예술가에게 어머니는 조국 같은 존재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비틀비틀 흐느적거리며 거리를 헤매는 ‘홈리스’들에게 잠시라도 어머니를 떠올리게 해주면 정신 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예술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야무진 헛꿈인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영혼 어머니 초상화 어머니 사진 이어령 선생

2024-06-06

[문화 산책] 자유인 이어령의 창조적 생각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 선생은 여러 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지성인, 무엇보다도 창의력에 빛나는 지성인이었다.   요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참 많고, 이들 ‘스타 지식인’의 영향력도 상당하지만 그중의 으뜸은 단연 이어령 교수였다. 말도 참 잘하고 글솜씨 빼어나고 생각도 깊고 근본적이다. 무엇보다도 새롭고 신선해서 매력적이다. 젊은이들보다 훨씬 젊은 청년이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하거나 아무 말이나 마구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고, 본질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는 내용을 정확하고 깊게 이해해야 하고, 속에 든 것이 많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는 진심 어린 배려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어령 선생은 단연 탁월하다. 꼭 알맞은 비유와 예시를 활용하여 사물과 진리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논리도 아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능력은 단연 뛰어나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칭호가 잘 어울렸다.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에서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 앞날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재능은 정말 탁월하고 소중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가위바위보 미학, 보자기론, 생명경제론, 디지로그 등등… 참으로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죽음을 앞두고 절실하게 토해낸 말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모은 ‘이어령의 80년 생각’이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등의 책에 그런 창의적 생각이 가득하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을 기다리며 탄생의 신비를 이야기하는 통찰력은 인간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준다.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이어령 선생의 통찰력은 알아듣기 쉽다. 예를 들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뱀과 도마뱀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내용 같은 것은 절묘하다. 이 우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즉 입자와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디지털은 셀 수 있게 분할이 되어 있어 계량화된 수치 즉 입자이고, 아날로그는 연속된 흐름 즉 파장이라는 설명이다.   “더 쉽게 얘기해볼까. 산동네 위의 집이라도 올라가는 방법이 다르지. 언덕으로 올라가면 동선이 죽 이어져서 흐르니 그건 아날로그야.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확한 계단의 숫자가 나오니 그건 디지털이네. 만약 언덕과 계단이 동시에 있다면 그게 디지로그야.”(‘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이어령 선생의 평생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우물 파는 일에 외롭게 앞장서온 치열한 도전정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서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고집 등은 우리 시대 참 스승의 모습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줬다.   특히 서양문명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의 해답을 동양과 한국의 생각과 철학에서 찾는 지혜는 대단히 소중하다. 이런 지혜는 인문학의 기본자세인 것은 물론이고, 예술가들이 꼭 배워야 할 교훈으로 여겨진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88서울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굴렁쇠 굴리는 소년이 보여준 침묵의 미학 같은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는 서양 문화가 동양 예술의 미학에 주목하는 추세가 강해지는 요즈음 이어령 선생이 남긴 창의적인 시각은 더욱 소중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고인의 뒤를 이어 지혜의 우물을 팔 사람은 누구일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이어령 자유 이어령 선생 창조적 생각 생각 죽음

202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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